화성의 공주 A Princess of Mars
에드거 라이스 버로우즈 지음 / 최세민 옮김 / 기적의 책
어릴 때 다녔던 사립 국민학교
(그렇다 나는 초등학교 세대가 아닌 중늙은이 -_-)에는 지금 생각해도 꽤나 큼직한 도서실이 있었는데, 그 당시만 해도 공부를 열심히, 잘 하고 책도 열심히 읽는 학생이었던 나는 (쿨럭) 수업이 끝나면, 바로 도서실로 달려가 그곳에 있는 수많은 책들과 조우하였다. 그렇다고 무슨 수준이 현격히 저 멀리에 있는 희안한 책(?)을 읽었던 것은 아니었고, 대충 레파토리는 정해져 있었다. 지금은 제목도 생각나지 않지만, '여우 어쩌구의 모험', '너구리 저쩌구의 모험', 이런 식으로 일관성 있는 제목이 붙어있던 어떤 전집이라던지, 최근에도 구하려는 사람이 있을만큼, 여러가지 측면에서 당시 기준으로서는 상당히 신선한 충격이었던, '에이브'전집이라던지... 그리고 그 외에는 역시 꼬마 남자애가 좋아할 만한 각종 모험담이나, SF소설들이 주요 레파토리였다.
그 중에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지저세계 펠루시다'라는 (제목만 봐도 그 나잇대의 남자애라면 확 끌리지 않겠는가!) 소설이 있었는데, 전체적인 내용은 다 기억나지 않지만 억지로 짜내면,
지구 내부에 거대한 빈 공간이 여러군데 있는데, 주인공들이 땅을 뚫고 지구내부를 탐험하다가 그 공간에 떨어지고, 알고보니 그 공간에는 거대한 파충류 형태의 생물이 인간(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지만)을 노예로 부리면서 살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신청했던 렛츠리뷰에서 운좋게도 당첨된 '화성의 공주'의 원작자가 바로 펠루시다(그리고 타잔)의 작가였는지는 몰랐었다. 뭔가 잊어버렸던 것을 우연챦게 어느 구석에서 발견한 듯한? 그런 설레임을 느끼면서 책을 펼쳐들었다.
1.
일단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 소설이 거의 100년전의 것이라는 것이다. 후기에 실려있는 잠본이님의 리뷰(깜짝 놀랐습니다 -_-)에도 이 점은 언급되어 있고, 그래서 현재의 눈으로 보기엔 진부한 측면이 있는 것은 감안해야한다고 씌어 있었는데, ^^;; 솔직히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그걸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그리 (일반론적으로) 수준이 높다...고 보기엔 힘든 이야기였다. (공짜로 책까지 주시고 리뷰를 쓰는데, 사실 무조건 좋은 이야기를 써야 하나? 하고 살짝 고민도 했다만, 걍 느낀대로 쓰련다 -_-) 간단하게 정리하면 딱! '펄프픽션'..
물론 이건 '화성의 공주'를 읽기 바로 전에 완독한 책이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정말로 (SF소설의) 100년 간극을 한순간에 느껴버려서 더 그렇게 느껴졌을...까? -_-.
2.
하지만 원래 책을 참 늦게 읽는 나임에도, 정말 빠르고 즐겁게 읽었다는 아이러니함을 경험한 소설이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감정이 또 흥미로왔는데, 뭐랄까 (이건 내가 나이가 든 독자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소년소녀 공상과학 모험소설'이라는 타이틀이 떡하니 박힌, 촌스럽지만 정감어린... 혹은 지금은 사라진 '소년중앙'이나 '새소년' 같은 잡지에 틈만 나면 나왔던 '미래는 이런 모습이다!' 류의 특집기사를 지금 시점에 보고 있는 감정이랄까?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논리적으로 맞느냐 맞지 않느냐' 보다, 말 그대로의 '꿈'과 '상상력'이 더 중요한 '이야기'들이 더 많았던 시절이었다고 생각된다.
생각해보면 요즘의 추세는 과거의 명작들을 발굴하여, 현재에 맞추어, 앞뒤 논리를 맞추고, 코웃음이 나오지 않는 수준으로 '리얼리티'를 부여하여 재창조하는 작업들이 넘치는 시기이지만, 한편으로 이 현상은 그 때 같은 순수하게 재미있는 '이야기'는 부족하여 오히려 과거에서 소스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한동안은 이 기류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화성의 공주는 적어도 그런 '이야기'의 순수한 즐거움은 그대로 가지고 있는 작품이었다.
3.
솔직히 SF의 탈을 쓰기는 했으나, 내가 보기엔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는 (남성 시선 중심의) 로맨스..로 보였달까.
이런 생각은 잠본이님의 리뷰에도 적혀 있지만, 중간중간 '무척이나 진지하게'(지금 보면 이게 너무 진지해서 오히려 웃기다) 화성의 생태라던지, 살고 있는 종족이라던지에 대해서 나름 그럴듯한 과학적(?)인 썰을 풀어놓고 있는데,
100년후의 독자인 나는 속으로는 '오... 대부분 지금의 과학적 지식으로는 거의 '판타지'로 느껴질 정도의 것들인데, 왠지 그 당시의 사람들은 받아들이는 것도 무척 진지했을 것 같아'하는 생각이 들어 재미있었다. ^^... (아니 정말 그렇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야기는 중반 이후에는 대놓고 SF를 벗어던지고 로맨스로 흐르는데, (심지어는 이야기의 흐름 조차도 좀 중구난방으로 변하는 것을 보면서 '이것은 기본적으로는 연재물. 팬의 반응을 보고 이야기 흐름을 마구 바꾼 것 같아. 하는 생각까지...들 정도?
이는 사랑에 그야말로 '눈이 먼' 주인공 '짹!'이 (스포일러라서 가림다. 보실 분은 긁으삼)
공주를 구하기 위해 생면부지의 종족 하나를 말살시키는 데에서 절정에 이른다 -_-
사실 미리 알고 감안하면서 보았음에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인종차별'이라던지 하는 공정하지 않은 시선이 조금은 불편했었는데, 여기에 이르러서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너무 심각하지 않게 생각하고 그대로 즐기기로 한 이후에는 (소년소녀공상과학모험소설,이라던지 단순한 로맨스로써) 이 황당한 부분조차도 역설적으로 거부감 없이 유쾌한 느낌(-_-응?)을 느낄 수 있었다... 한마디로.
'오오.... 얼마나 사랑하기에 도대체!!!!!!! 사랑은 위대해!' 하는 마음가짐이다.
그렇다. 이것은 스페이스 오페라. 모험과 로맨스가 가득한 러브스토리이며, 그냥 배경이 우주일 뿐인 것이다.
4.
이 작품은 이후에도 이어져서 '잭 카터'가 등장하는 시리즈가 있다는데, 사실 다 보고 싶고 흥미가 생겼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무척 좋아했고, 또 얼마전 탄생 30주년을 맞이해서 새롭게 애니메이션화 된다는 (감독이 '데자키 오사무!!') 우주해적 코브라라는 작품이 있는데, 조금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뭐랄까. 이런 류의 작품은 '시리즈화'되고 '수십년, 수백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더욱 매력적으로 되어가는 부류인 듯 싶다. 유치하면 유치한 대로 '키득'거리면서도 애정이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는 그런 것이랄까? 물론 작금의 청소년들이 보기엔 그냥 '유치해'로 보일 수 있겠으니, 시리즈로 발매가 된다고 했을 때 어떤 결과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
-_- 적어도 '지저세계 펠루시다'는 한번 제대로 발매해 주면 좋겠다. (쿨럭) 분명 나와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중늙은이;;가 꽤 될텐데. 흥행은 이쪽이 더 나을 거 같은...
기타.
사랑에 완전히 푹 빠져 절여진 '잭 카터'씨와 화성의 공주인 '데자 소리스'는 뒷부분으로 가면 정말 '온몸이 오그라들 듯한' 닭살스러운 대사도 몇번 읖조리는데.... 사실.... 난 그 순간 이 소설의 설정상 이들이........
온 몸에 몇가지 장신구만 걸친 채 사실은 '완전히 나체'
라는 것을 계속 떠올리면서..... OTL (이하 생략)
물론 소설을 읽다보면 이러고 있다는 건 자연스럽게 잊게 되지만, 난 왜 계속 생각 난 거지.